1996년 9월 13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목표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었다. 29개국 170편의 작품과 27개국 224명의 초청인사들이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이 영화제는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국제 영화제 였으며, 이 영화제 이후 열린 수많은 한국 영화제들에 영향을 미쳤다.
1997년 10월 10일에 열린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성장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한 영화제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PPP(부산 프로모션 플랜)’이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것이다.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르러서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PPP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한국, 아시아의 영화 프로젝트 들이 해외의 투자자와 제작자를 만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성공한 PPP는 ‘PISAF’의 ‘PSPP’와 ‘SICAF’의 ‘SPP’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99년 10월 14일에 열린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53개국 207편의 영화를 상영하였다. 초청작을 다양화 하여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어느 때보다 수준 높은 작가영화를 많이 선보였다.
2000년 10월 6일에 열린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영화제로 발돋움 했다. 관객들은 영화제의 영화를 보고 싶어 했으며, 세계의 영화인들은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했다. 무엇보다도 3회째를 맞는 ‘PPP’의 성장으로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최대 마켓으로 발전하였다. 2001년 10월 9일에 열린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60개국의 작품이 상영되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영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PPP에선 NDIF(New Direct I Focus)를 선보여 신인 감독 발굴을 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02년 11월 14일 열린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세계 3대 영화제의 집행위워장들이 영화제를 찾으면서 영화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AFIN을 구축하였고,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 마켓 AFIC를 출범하였다.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마스터 클래스’와 ‘10인의 감독과 영화 보기’를 새로 시도하였고, ‘오픈토크’와 ‘관객과의 대화’가 성공을 거두었다. 첫 심야상영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하였다. PPP는 계속된 성공을 이어갔다. 올해 10월 4일에 열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64개국 275편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또한 APAN(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 발기대회가 열렸다. 그 밖에도 에드워드양 특별전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진행 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1회부터 13회까지 13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제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되었다. 앞으로는 세계 최고의 영화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우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생했던 자원활동가 들과 열정 하나 만으로 일했던 스텝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부산영화제를 떠난다면, 그래서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장점인 열정이 떠나버린다면 부산영화제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의 아쉬웠던 점은 반성하고 잘된 점은 더 발전시키면서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 하기를 바라면서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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